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 4대 암군 (문단 편집) == 망국의 장본인들 ==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정덕제]], [[가정제]], [[만력제]], [[천계제]] 문서를 참고하자.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위치한 [[융경제]], [[태창제]]와 [[숭정제]] 문서도 읽어보면 '''[[타이거즈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명은 어떻게 망국이 되었나]]''' 잘 알 수 있다. 지금에 와서야 평가가 좀 많이 후해진, [[폭군]]이나 [[암군]]이라기엔 일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놀았던''' [[플레이보이]] 정덕제, [[사이비 종교]]에 빠져 나라를 망친 가정제, 무위의 도를 실천하느라 나라를 망친 만력제, 희대의 [[마에스트로]] 천계제 등 캐릭터도 참 가지각색이다. 그 사이에 낀 [[명말 3대 의안]] 같은 일 또한 쏠쏠하다. 다만 만력제의 경우 한국에서는 임진왜란 원조 때문에 종종 "중국 입장에서나 암군이지 조선 입장에서는 도움이 된 황제이지 않느냐?"라는 옹호론이 나오거나 '암군이었지만 조선을 사랑했던 중국 황제' 정도로 미화하기도 하는데, 사실 조선시대 이후 현대에 들어서까지 만력제를 칭송할 필요는 없는 것이, 당장 조선인들도 만력제에게 도움받은 것에 고마워한 것과는 별개로 만력제가 막장황제인 점은 인지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사리에 어두운 임금은 원망하지 않는 법이니, 천계(天啓)황제는 원망할 수 없는 임금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만력(萬曆)황제는 초년에 영매하고 호걸스럽던 임금이었는데도 사십 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신료들을 인접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경계로 삼아야 할 일입니다."] 다만 이런 황제들이 연임하는 가운데에도 주변에 대대적으로 영향력을 떨치기도 했고 획기적인 기술적 혁신이 일어나기도 했다는 점으로 '''명나라의 [[관료제|관료체계]]가 얼마나 고도화했나를 증명하는 예시''', 혹은 '''[[홍무제]]가 얼마나 나라를 잘 만들어놨는지에 대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애초에 가정제와 만력제라는 희대의 종자들이 연임하는 와중에도 90년은 버틴 것도, 앞선 80년간 홍무제를 시작으로 한 명군 라인들이 나라의 초석을 엄청나게 잘 닦아놨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력제 초기 명재상 [[장거정]]이 주도한 [[일조편법]]이라는 세제개혁으로 일시적인 중흥을 이루지만 그 이후 만력제가 파업하는 한편 [[만력 3대정]]으로 말끔하게 다 말아먹었다. 돈으로 비유하면 선덕제까지 쌓은 적금을 정덕제 때까진 어느정도 유지하다가 가정제 때부터 본격적으로 까먹기 시작하더니 만력제 초기에 어찌어찌 다시 조금씩이나마 쌓게 되었다가 순식간에 다 까먹었고 결국 천계제 때 남은 것까지 다 날린 셈. 그 결과 명나라는 밖으로는 [[청나라]]의 침공, 안으로는 농민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했다. [[명나라]]의 이름을 떨친 홍무제~선덕제로 이어지는 명 초반 명군라인이 쌓은 위엄을 딱 90년 만에 까먹었단 점에서 다른 의미로 대단한 수준인데 아이러니한 건 이후 중국의 대세가 된 청나라도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누르하치]]~[[건륭제]]로 이어지는[* 다만 건륭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명군라인으로 기반을 닦았다가 마찬가지로 [[도광제]][* 그래도 [[가경제]] 때까지는 나라가 대놓고 기울진 않았다.]를 시작으로 한 암군의 연임으로 나라가 망했다는 것. 물론 청나라는 내외적인 상황상 답이 없는 명 4대 암군보단 실드쳐줄 사유가 많다.[* 정확히는 청 몰락의 시작은 건륭제 때였는데 이것도 건륭제 말기에 '''너무 오랜 재임기간'''이란 점이 터지면서 여러 문제가 연달아 터진 것에 가깝고 [[니오후루 허션]]이 엄청나게 해먹은 것도 한몫 한다. 거기에 이 시기 [[청나라]]는 서양의 접근으로 외부적으로 풍랑을 맞던 시기인 데다가 [[도광제]]는 무능할지언정 황제치곤 상당히 검소하게 살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후 [[동치제]], [[광서제]]는 나름대로 개혁을 시도했지만 천계제처럼 [[서태후]]의 꼭두각시 인형이나 다름없었고 [[함풍제]]도 여러 악재가 겹쳐 결과가 최악으로만 나와서 그렇지 노력하려는 면은 있었다. 게다가 [[청나라]]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청나라]]는 만주족, 몽골족, 한족, 티베트족, 위구르족 등 중앙아시아 유목민족 등이 묶여있는 사실상의 [[동군연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명나라의 황제들과 통치 난이도부터 엄청난 차이가 난다. 오죽하면 역사학자들이 [[명나라]]의 명군들이 [[청나라]]에 오면 평범한 축에 들어가는 황제라고 할 정도. 즉위할 당시에 본인의 나이가 너무 어렸을뿐더러 자신의 섭정을 맡은 아버지 [[순친왕]]과 양어머니 융유태후에게 [[서태후]]만큼의 강력한 권력과 카리스마가 없었고 [[청나라]] 자체도 사실상 멸망 직전에 가까웠던 [[선통제]]는 말할 것도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